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3월, 2023의 게시물 표시

Background and History of M.L.B

  Baseball is one of the most popular sports in the United States, and the Major League Baseball (MLB) is the top professional baseball league in the world. With a rich history spanning over 150 years, MLB has become an integral part of American culture. In this blog, we will take a detailed look at the history of MLB baseball. Origins of Baseball: The origins of baseball can be traced back to 18th century England, where a game called rounders was played. This game was brought to North America by English immigrants in the 19th century and evolved into what we know as baseball. The first recorded game of baseball was played in 1846 in Hoboken, New Jersey. By the 1850s, baseball had become a popular sport in the United States, with amateur clubs and leagues forming in many cities. Formation of the National League: In 1876, the National League of Professional Baseball Clubs was formed. This was the first professional baseball league, with teams in Boston, Chicago, Cincinnati, Hartf...

대한민국 최초의 서양식 건물은?

 대한민국 최초의 서양식 건물은 “덕수궁”입니다. 덕수궁은 조선시대 궁궐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근대식 건물이며, 현재까지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는 곳이죠. 최근엔 야간개장과 다양한 문화행사 등으로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모으고 있답니다. 하지만 아직 모르는 분들이 많아서 그런지 ‘덕수궁’이라는 이름보다는 ‘경운궁’이라는 이름으로 알고 계신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이번 포스팅에서는 덕수궁의 역사와 명칭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덕수궁’이란 이름은 언제 생겼나요? 조선시대 고종황제께서 1907년 왕위를 순종황제에게 물려주고 나서 경운궁(덕수궁)에 머무르시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궁호를 ‘덕수’라고 정하셨다고 합니다. 이후 1910년 국권피탈 후 일제강점기 때 일본제국주의자들이 덕수궁 석조전 앞에 연못을 파고 분수를 설치하면서 지금의 덕수궁 모습이 만들어졌다고 해요. 즉, 원래 있던 왕궁 터에 일본인들의 손길이 닿으면서 오늘날의 덕수궁이 된거죠. 왜 하필이면 덕수궁인가요? 원래 덕수궁 자리에는 성종의 형 월산대군의 저택이 있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의주로 피난갔다가 한양으로 돌아와 이곳 행궁에서 머물면서 정릉동 행궁이라 불렸죠. 광해군 즉위 후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이 행궁은 경운궁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는 다시 왕이 머무는 궁궐로서의 위상을 갖추게 됩니다. 그리고 대한제국 선포 후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서 돌아온 후 부터 본격적으로 황궁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1897년 10월 12일 환구단에서 황제즉위식을 거행함으로써 명실상부한 대한제국의 황궁이 되었죠. 그러나 1919년 고종이 승하하자 1920년 중화전이 헐리고 공원이 조성되면서 규모가 대폭 축소되었고, 1933년 미술관 건립계획 발표후 1938년 미술관 준공과 함께 대부분의 건물이 철거되어 현재의 크기로 줄어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중화전은 왜 없어졌나요? 1910년 8월 29일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되고 난 후 이듬해 1월 21일 이왕직 장관이었던 데라우치 마...

셔스섬의 이단아 도도새를 알고 계시나요?

1600년도에 멸종된 도도새를 알고 계시나요? 오늘은 동물계의 이단아라고 불리는 도도새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해요.  이 새는 17세기 포르투갈인들이 발견하기 전까지는 세상에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은 종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600년전 인도양 모리셔스 섬에 처음 도착한 포르투갈 사람들은 이곳에 사는 거대한 새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하는데요, 몸집이 크고 날개가 퇴화되어 날지 못하는 모습이었기 때문이죠.  당시 유럽인들에게 '도도'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이 새는 몸길이 1m 가량에 몸무게 200kg 이상 나가는 대형 조류였어요. 하지만 너무 큰 덩치 탓에 먹이를 제대로 구하지 못해 결국엔 멸종되고 말았다고 하네요.  왜 하필이면 이렇게 거대하게 진화했을까요?  혹시 인간과 비슷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었던건 아닐까요?  자세한 내용은 아래 본문에서 살펴볼게요. 도도새는 어떻게 멸종되었나요? 포루투갈 선원들이 아프리카 동쪽 바다 모리스섬에 도착했을 때 원주민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고 해요. 그래서 배 위에서 생활하던 중 작은 새 한마리를 발견했는데 생김새가 특이했다고 합니다.  부리가 길고 넓으며 다리가 짧고 발가락 사이에 물갈퀴가 있었다고 해요.  또한 깃털 색깔 역시 독특해서 마치 공작새처럼 화려한 색을 띠고 있었죠.  이후 몇 년 동안 여러 종류의 새들을 잡아먹으면서 점점 커졌고 마침내 2m 가까이 성장했어요.  그리고 다시 먼 항해를 떠났는데 이때쯤부터는 다른 새들과는 달리 전혀 날지 못했다고 해요.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비행능력을 상실한 채 지내다가 1681년 마지막 개체가 죽으면서 지구상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고 합니다. 도도새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었나요?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점은 크기입니다.  현재 우리가 알고있는 타조보다도 훨씬 컸고 무게도 300kg이상 나갔다고 해요.  두번째로는 긴 부리였는데요, 이것은 ...

[에디슨] 그는 어떻게 천재가 되었나? (feat. 인생역전 스토리)

 [에디슨] 그는 어떻게 천재가 되었나? (feat. 인생역전 스토리)  인류 역사상 최고의 발명가로 손꼽히는 토마스 에디슨. 초등학교 때 위인전으로만 접했던 인물이지만 성인이 된 이후로도 꾸준히 존경받아온 인물이기도 하다. 그럼 이토록 위대한 업적을 남긴 에디슨에게는 어떤 일화가 숨겨져 있을까? 바로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3가지 사건인데 그것들은 무엇일까?  첫 번째 일화는 전구 개발 과정에서 일어난 실수담이다.   1879년 미국 뉴저지 주 멘로파크에 위치한 연구실에서 일하던 에디슨은 필라멘트 재료로 대나무를 사용했는데 이것이 그만 폭발 사고로 이어진 것이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자칫하면 대형 화재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이때만 해도 전기 조명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고 위험하다는 인식이 팽배했기에 모두가 반대했었다.  심지어 주변 사람들로부터 미친놈 취급까지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에디슨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였다.  그리고 마침내 백열전구를 완성시켰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똑같은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나도 똑같이 무모하다고 비난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이야 세상 모든 집집마다 불을 밝힐 정도로 흔하지만 당시로선 상상조차 못 했던 획기적인 기술이었으니까 말이다.  두 번째 일화는 축음기 개발 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다.   1906년 12월 31일 밤 11시 40분경 뉴욕 시 그랜드 센트럴역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이날 처음으로 공개된 소리 저장 장치 덕분에 무려 78초 동안 음악이 재생되었던 것이다.  세계 최초의 녹음기로 기록된 원통형 실린더 음반에는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4악장 환희의 송가가 담겨 있었다. 그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특히 신문사 기자들은 기사를 쓰기 위해 몰려들었다.  그러자 에디슨은 이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