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초의 서양식 건물은 “덕수궁”입니다. 덕수궁은 조선시대 궁궐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근대식 건물이며, 현재까지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는 곳이죠. 최근엔 야간개장과 다양한 문화행사 등으로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모으고 있답니다. 하지만 아직 모르는 분들이 많아서 그런지 ‘덕수궁’이라는 이름보다는 ‘경운궁’이라는 이름으로 알고 계신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이번 포스팅에서는 덕수궁의 역사와 명칭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덕수궁’이란 이름은 언제 생겼나요?
조선시대 고종황제께서 1907년 왕위를 순종황제에게 물려주고 나서 경운궁(덕수궁)에 머무르시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궁호를 ‘덕수’라고 정하셨다고 합니다. 이후 1910년 국권피탈 후 일제강점기 때 일본제국주의자들이 덕수궁 석조전 앞에 연못을 파고 분수를 설치하면서 지금의 덕수궁 모습이 만들어졌다고 해요. 즉, 원래 있던 왕궁 터에 일본인들의 손길이 닿으면서 오늘날의 덕수궁이 된거죠.
왜 하필이면 덕수궁인가요?
원래 덕수궁 자리에는 성종의 형 월산대군의 저택이 있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의주로 피난갔다가 한양으로 돌아와 이곳 행궁에서 머물면서 정릉동 행궁이라 불렸죠. 광해군 즉위 후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이 행궁은 경운궁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는 다시 왕이 머무는 궁궐로서의 위상을 갖추게 됩니다. 그리고 대한제국 선포 후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서 돌아온 후 부터 본격적으로 황궁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1897년 10월 12일 환구단에서 황제즉위식을 거행함으로써 명실상부한 대한제국의 황궁이 되었죠. 그러나 1919년 고종이 승하하자 1920년 중화전이 헐리고 공원이 조성되면서 규모가 대폭 축소되었고, 1933년 미술관 건립계획 발표후 1938년 미술관 준공과 함께 대부분의 건물이 철거되어 현재의 크기로 줄어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중화전은 왜 없어졌나요?
1910년 8월 29일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되고 난 후 이듬해 1월 21일 이왕직 장관이었던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주도해서 강제로 해체되었습니다. 또한 본래 2층 목조였으나 단층 목조건물로 개조되었죠. 이렇게 훼손된 상태로 방치되다가 해방이후 미군정청 소유가 되었고, 한국전쟁때 폭격으로 완전히 소실되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1954년 재건되었는데 정면 5칸, 측면 4칸의 다포계 팔작지붕건물로서 현존하는 국내 최대규모의 목조 2층집이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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